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동기 시대 (문단 편집) === 특징 === * 가끔 후기에 전기 [[철기 시대]]를 넣는 경우가 있는데, 그 이유는 전기 철기 시대 대표 유물이 [[세형 동검]]과 [[다뉴세문경]]이기 때문이다. 또한 토기도 무문토기인 점토대토기여서 같은 시대 설정으로 넣어도 무리가 없다. * 한반도에서는 무늬가 없는 [[민무늬 토기]]가 널리 사용 되었다. * 대한민국 선사 시대 연구자들 중에서는 청동기 시대 전공자가 제일 많다고 한다. 연구할 수 있는 [[유물]]도 많고 [[유적]]도 많기 때문이다.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'무문 토기 시대'라는 말로 사용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. 솔직히 말해서 98년도까지 [[동검]]을 포함 청동기가 고작 100개가 나왔다고 하는 게 한국 청동기 고고학의 상황이다. 이 정도면 서주 시기에 남중국에 있었던 서주와는 다른 문화인 삼성퇴 유적의 구덩이 하나에서 나온 청동기 숫자보다 못하다. 그래서 한국 청동기 문화에 대해 설명할 때 그 문화 유형을 나누는 기준은 토기와 주거지지 청동기가 아니다. 심지어 기원전 15세기로 편년되는 미사리 유형은 청동기가 없다. 덕분에 실상 문화 유형 파악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무문 토기를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. * 근대 고고학이 한국에 전래된 이래로 [[고조선]]의 성립 연대를 청동기 시대로 보는게 통설이었다. 그러나 전통적인 사관에서 고조선의 중심지로 비정된 평양 일대를 포함해서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 관련 유물 발굴이 영 시원찮아서 의고주의적 사학에서는 고조선의 성립 연대를 약간 늦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. 이게 일제 식민지 시절이랑 그로부터 약간 뒤까지 일이라 의고주의적 관점이 식민사학이라고 매도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. 그러나 1980년대 이후로는 [[랴오허|요하]] 일대의 청동기 시대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 지역의 문화와 요서 지역 그리고 요동의 [[예맥]]족 세력과의 관련성과 상호 교류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으며, 국사책의 [[고조선]] 건국 연대를 기원전 20세기로 과감하게 올려서 서술하는 것도 이런 경향과 관련 있다. 다만 저 1980년대 이후로 중론으로 모인 학설에서는 고조선과 연관된 유적인 [[십이대영자]] 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10세기 정도로 본다. 기원전 20세기에 존재했던 하가점 하층문화는 어쩌면 십이대영자 문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도. 게다가 교과서에서 고조선 관련 유적처럼 서술하는 [[고인돌]]은 십이대영자 문화와는 구별되는 유적이다. 동북아 역사 재단에서 펴낸 연구서 <요하 문명의 확산과 중국 동북 지역의 청동기 문화>, <요하유역의 초기 청동기 문화> 등을 참조. * [[기자조선]]이 부정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렇게 [[랴오허|요하]]-[[만주]]-[[한반도]] 청동기와 [[황하]] 유역의 청동기가 확실히 다르기 때문이다. 만약 [[상나라]]의 기자가 정말로 조선 왕에 봉해져 왔다면 한반도에서도 황하 계통의 청동기가 발굴되어야 하나, 현재 한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기를 보면 황하 유역 청동기는 발견된 바 없고 오히려 만주-요하 지역의 청동기와 유사하다. *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01&aid=0004721349|2010년 한국에서 청동기 시대 화장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무덤이 발견되었다.]] * 춘천 [[중도(섬)|중도]]에서 대규모 청동기 유적지가 발견되었다. 지금까지 발견된 청동기 시대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커서 청동기 시대 연구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, 문제는 해당 지역이 [[레고랜드]] 등 대규모 레저 관광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었는데 유적지 발굴로 취소되게 생겨서 사업에 큰 지장이 생길 예정이다. 게다가 현재 발견되는 수준으로 보면 중도 전체가 경주에 맞먹을 만큼 유적 밀집 지역이라고 한다.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407281505181&code=940100|#]] * 2020년 5월 [[충청북도]] [[청주시]] 월오동에서 다량의 [[청동기]] 시대 문화유적이 출토됐다. 북방식과 남방식의 고인돌 형태가 모두 발견된 이른바 '[[고인돌]] 백화점'으로 불리며 역사적 가치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. 이번 출토 현장에서 함께 발견된 붉은관 [[토기]], 돌칼, [[화살촉]] 등의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. 또한 중층 형태의 지석묘가 국내에서는 첫 발견됐다. [[충청북도]]는 이번 유적터를 당초 조성 중이던 재난안전체험 복합타운 한켠에 교육 자료로 보존 조치할 방침이다. [[http://news.sbs.co.kr/news/endPage.do?news_id=N1005790569&plink=THUMB&cooper=SBSNEWSPROGRAM|#]] 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001&oid=052&aid=0001441199|[자막뉴스] 충북 청주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'청동기 시대' 유적]] 하지만 2022년 6월 뉴스 기사에 의하면 소방서 관할로 되어 있다 보니 '청주 월오동 고인돌'이라는 작은 표지판만 있고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이 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. [[http://www.cctimes.kr/news/articleView.html?idxno=709719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